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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 ~
1909
방정환 출생
서울 야주개(현재 종로구 당주동), 생선과 곡식을 사고파는 방경수(方慶洙) 큰아들로 태어남
보성소학교 유치반 입학
그 당시 새로운 서당식 교육을 받음
어린이 연설토론회 <소년입지회> 조직 활동
친구들과 석유 궤짝으로 만든 철판 걸고 토론회 진행
토론 주제: ‘손이 나으냐 발이 나으냐’와 같은 것을 다룸
매동보통학교 입학
당시 사직동에 위치한 학교
1910 ~
1919
미동보통학교로 전학
현재 서대문 위치(2학년으로 전학)
미동보통학교 졸업, 선린상업학교 입학
아버지 뜻에 따라 상업학교 입학 최남선이 발행한 『소년』, 『붉은져고리』, 『새별』 등 소년 잡지를 열심히 읽음
선린상업학교 중퇴
어려워진 가정형편으로 졸업 1년 남기고 중퇴
사자생(寫字生) 취직
집안을 돕기 위해 월급 5원에 총독부 토지조사국으로 취직
유광렬(柳光烈)과 친하게 지내며 독서에 깊이 빠짐
손용화와 결혼
천도교 3대 교주 손병희 선생의 셋째 딸 손용화와 결혼
가난과 병고로 고생하던 어머니 별세
방정환의 장남 운용(云容)을 낳음
비밀 결사조직 <경성청년구락부> 결성
보성전문학교(현 고려대학교) 입학하여 비밀 결사조직 결성
12월 자작 각본 연출 ‘동원령’ 연극
청년 문예 잡지 『신청년』 발간
최초의 영화 잡지 『녹성(綠星)』 발행에 참여
대한독립선언, 3·1혁명
조선의 ‘독립국’임을 선언하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3·1만세운동을 전개
『조선독립신문』 나누어 주다가 검거
『독립선언서』와 『조선독립신문』 나누어 주며, 3·1 만세운동 진행
집에서 등사판(간단한 수동 인쇄기계)으로 신문을 찍다가 일본 경찰에 붙잡혀 고문을 받고 일주일 만에 석방
1920 ~
1929
월간 종합지 『개벽』 창간 동인으로 참여
창간호(첫 번째 잡지)에 실린 방정환의 소설 『유범』 등 4편이 검열로 발매 금지 압수
방정환의 장녀 영화(榮華)를 낳음
조선학생대회 순회강연단 활동
조선학생 순회강연단 전국 강연 활동을 함. 당시 보성전문 법학과 학생 신분
동아일보 (1920.8.9.)
개벽사 동경 특파원으로 도일(度日)
천도교청년회 동경지회 설립 지회장 맡음
4월 일본 동경 도요대학 문화학과 청강생 입학
김기전 이정호 등과 <천도교소년회> 조직
“씩씩하고 참된 소년이 됩시다. 그리고 늘 서로 사랑하며 도와갑시다” 표어 사용
종로경찰서 구속
‘태평양회의’를 계기로 청년들을 선동해서 저항운동을 계획한 혐의로 종로경찰서 구속됨
천도교소년회 창립 1주년 ‘어린이의 날’ 창립 기념식 개최
‘어린이의 날’을 처음 이름 짓고 “십년 후 조선을 려(慮)하라(생각하라)“ 등 전단지 4종을 서울 시내에 널리 나누어 줌
매일신보 (1922.5.1.)
『사랑의 선물』 개벽사에서 출판
안데르센 동화, 그림 동화 등을 번안한 세계명작동화집 『사랑의 선물』 출판
『사랑의 선물』은 생전에 남긴 방정환의 유일 저서
『사랑의 선물』(개벽사, 1922)
어린이 순문예지 『어린이』 창간
<조선소년운동협회> 조직
천도교소년회, 불교소년회, 조선소년군을 중심으로 <조선소년운동협회> 조직
<색동회> 정식 창립 발회식
일본 동경 삼륜(三輪) 사진관에서 기념 촬영
방정환, 강영호, 손진태, 윤극영, 정순철, 고한승, 진장섭, 조재호, 정병기 9명 창립
제1회 어린이날 기념식 개최
제1회 어린이날 기념식 성대히 거행
최초의 ‘어린이해방 선언’ <소년운동의 기초 조항>을 선포함
<소년운동의 3개 기초 조항>
① 어린이를 재래의 윤리적 압박으로부터 해방하여 그들에 대한 완전한 인격적 예우를 허하게 하라
② 어린이를 재래의 경제적 압박으로부터 해방하여 만 14세 이하의 그들에 대한 무상 또는 유상의 노동을 폐하게 하라
③ 어린이 그들이 고요히 배우고 즐거이 놀기에 족한 각양의 가정 또는 사회적 시설을 행하게 하라
여성 잡지 『신여성』 창간호를 내고 편집 겸 발행
방정환의 둘째 아들 하용(夏容)이 태어남
‘세계소년작품전람회’ 작품 모집 시작
『어린이』 (1925. 2.)
제3회 어린이날 기념식 개최
서울에 오색 광고 전단 50만 장 배포
‘어린이날 노래’를 부르며 ‘우리의 희망은 어린이’ ‘앞날의 임자는 어린이’ ‘내일을 위하여 어린이를 잘 키우자’ 등을 들고 소년군 취주악대를 뒤따르는 시가행진을 함
『어린이』 부록 어린이신문 처음 제작, 1931년 9월까지 6년간 46호 발행
『어린이』 9권 5호 부록.
『어린이세상』 43호.
순종 황제 국장으로 인해 어린이날 행사 중지
<조선소년운동협회> 발표문
“금년 <어린이날>은 아주 중지되었습니다. 선전지 1백만 매도 다 막아 놓았고 기 행렬 준비도 다 해 놓았으나 국상으로 인하여 음력 5월 1일에도 못하게 된 고로 더 이날저날 구차히 연기하는 것은 <어린이날>의 진정한 의의를 감하게 하는 일이고 따라서 <어린이날>의 힘을 약하게 하는 일인고로 어느 해에던지 5월 1일에 못하게 되면 그 해는 딱 중지하여 몇 단체나 몇 사람의 의견으로 이리 저리 연기할 수 없는 것인 줄로 알게 할 필요가 있어 아주 중지하기로 하였습니다.”
『어린이세상』 9호 (1926. 7.)
세계명작동화집 『사랑의 선물』 10판 발매 돌파
“크지도 않은 조그만 책 <사랑의 선물>이 이렇게 무섭게 많이 팔리는 것을 보고 누구든지 놀랍니다. 그러나 단 한번이라도 읽어본 이는 그 까닭을 압니다. 세계 각국에서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로만 고르고 골라서 소파 방정환 씨가 재미있게 재미있게 번역하신 것이라 첫 장만 읽으면 끝장까지 안 보고는 놓지 못하게 재미있는 까닭입니다.”
『어린이』 (1926. 9.)
<어린이와 직업>이라는 제목으로 라디오 방송
어린이운동의 통합 단체 ‘조선소년연합회’의 위원장이 됨
어린이운동이 통합·분열 등을 겪다가 ‘조선소년연합회’로 통합, 위원장이 됨
5월 첫공일(일요일)을 어린이날로 정하고, 소년회원의 연령을 18세 제한하는 결의 포함
방정환의 차녀 영숙(榮淑) 출생
변경된 첫째 일요일의 어린이날, 어린이 동화대회 개최
-천도교기념관에서 1,500여 명이 모인 어린이들에게 어린이 동화대회 개최
<조선소년총연맹>의 주관으로 전국적으로 거행
『개벽』사 어린이부 주최, 색동회 주관, 동아일보사 후원으로 천도교기념관에서 국제적 어린이 행사 <세계아동예술전람회> 개최
『어린이』 신년호, ‘조선 13도 고적탐승 말판’ 부록 제작
말판의 노는 법을 잡지 지면에 실음
“이번 책에 하나씩 그저 끼워 드린 대부록 이번에는 13도 고적을 찾아다니는 말판이니 이것 가지고 노는 동안에 저절로 조선 역사를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 그림에 나타난 곳을 달마다 자세히 소개할 터인즉 지금 잘 눈 익혀 두었다가 이 다음에 그것을 읽으면 더욱 유익합니다.”
『어린이』 3월호 창간 6주년 기념호, <조선자랑호>로 소개
첫 페이지 ‘조선자랑가’ 싣고, 조선의 전승(戰勝) 3대 자랑 ‘살수대첩’ ‘한산대승’ ‘안시대승’ 등 소개. 조선에 대한 각종 자랑거리, 산수, 의복, 동요, 도량, 서화, 음악 등 자랑. (<어린이> 부록 ‘조선자랑 말판’ )
개벽사 월간지 『학생』 창간
『어린이』지 이후, 6년 만에 성장한 어린이 독자를 위한 잡지. 12호(1930년 11월)로 폐간
1930 ~
1939
『어린이』 창간 7주년 기념호, ‘조선 제일호’ 특집
-‘조선 제일 큰 책’(팔만대장경), ‘조선 제일 큰 강’(압록강), ‘조선 제일 높은 산’(백두산) 등으로 민족의식 고취
『어린이』 (8권 10호) ‘특별사고’
-모든 원고가 검열로 불허가, 특별사고를 냄
“『어린이』 이 달치는 이미 신문지상을 통하여 발표된 바와 같이 당국에 제출하였던 원고 전부가 불허가의 처분을 받은 까닭에 두 번씩 써주신 원고 이외에 것은 어쩔 수 없이 못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편집국과 영업국의 총동원으로 밤을 새워가며 다시 재편집을 한 것이 이것입니다.”
개벽사 월간 종합지 『혜성』 창간 (발행인 차상찬)
지병인 신장염과 고혈압이 악화되어 경성제국대학 부속병원 입원
만 31세 짧은 생애를 마감
“어린이를 두고 가니 잘 부탁하오” 유언
천도교당 앞에서 영결식 거행 소년들이 어린이의 벗 방정환의 죽음을 애도함
『어린이』 (9권 7호), ‘방정환 추도호’로 제작
이정호의 ‘오호!! 방정환 선생’, 윤석중의 ‘못가세요 선생님’등 각계 애도사 실림
『어린이』지 통권 121호로 정간, 1935년 3월 통권 122호로 폐간
방정환 기념비 건립식
‘동심여선(童心如仙)’, ‘어린이의 동무 소파 방정환지묘’가 새겨짐
기념비가 건립된 아버지의 묘 앞에 장남 운용과 차녀 영숙
중일전쟁으로 일제의 <어린이날> 개최 금지, 소년운동 단체 강제 해산
해방, 첫 번째 어린이날 기념식 거행
동아일보 (1946. 5. 3.)
1950 ~
1988
방정환 탐정소설 『칠칠단의 비밀』 단행본 첫 출간
‘대한민국 어린이헌장’ 제정, 선포
서울 남산 어린이회관 옆 녹지대 소파 방정환 동상 건립
어린이날, 공휴일로 지정
‘건국포장(애국장, 제6호) 추서 받음
10년 후 1990년 12월 26일자로 고쳐 ‘건국훈장(애국장)’(제369호) 다시 받음
망우리 방정환 묘역 수축, ‘소파 방정환 선생의 비’(비문 이재철) 건립
‘소파어록비’ 건립
어린이의 생활을 항상 즐겁게 해주십시오.
어린이는 항상 칭찬해가며 기르십시오.
어린이의 몸을 자주 주의해 살펴 주십시오.
어린이에게 책을 늘 읽히십시오.
희망을 위하여,
내일을 위하여 다 같이 어린이를 잘 키웁시다.
[어린이날의 약속] 중에서
‘대한민국 어린이헌장’ 개정 발표
1990 ~
2017
소파 선생 생가터(당주동)에 ‘소파 방정환 선생 나신 곳’ 유허비 건립
문화부 ‘5월의 문화인물’ 소파 방정환 선생 선정
방정환 부인 손용화 여사 별세
개정된 ‘대한민국 어린이헌장’비 건립
방정환 탄생 100주년 기념, ‘새천년 어린이선언’ 선포
고려대학교, 소파 방정환 선생에게 명예졸업장 수여, 법학사 학위 추증
국가보훈처에서 이 달의 독립운동가로 ‘방정환’ 선정
방정환은 생전에 세계명작동화집 『사랑의 선물』을 남겼다. 방정환의 초기 작품은 청년 시절 투고했던 『청춘』, 『유심』, 또 손수 관여하거나 창간 편집한 『신청년』, 『녹성』, 『신여자』 등에 두루 편재해 있다. 시, 소설, 수필 등 다종의 글을 썼다. 그가 사용한 필명은, 小波, 잔물, 몽견초, 목성, 은파리, 몽중인, 북극성, ㅈㅎ생, 길동무 등 20여종이 넘는다. 잡지 왕국 개벽사를 총지휘하며 발행한 『개벽』, 『어린이』, 『학생』, 『부인/신여성』, 『별건곤』 등에 그의 글이 다수 수록되어 있다. 방정환은 동요 「귀뚜라미」, 「눈」, 동화 「4월 그믐날밤」, 「이상한 샘물」, 「호랑이 형님」, 소년소설 「금시계」, 「칠칠단의 비밀」, 동화극 「노래주머니」, 평론 「새로 개척되는 동화에 관하여」 등 뛰어난 명편을 남겼으며, 현대 어린이에게 꾸준히 애독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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